2017. 3. 13. 01:51



사월은 차갑다

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

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

그는 어째서 가까운가


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 살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

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뒤뚱거리는 아기처럼

닫힌 문이 뒤뚱거린다

문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맥주가 목젖을 가시화한다

안주가 어금니를 가시화한다

우리의 대화를 대신한다


대화는 기억해둔 것들을 잃게 한다

사월은 유실물 보관소일지 모른다


솥에 뚜껑이 없었다면

쌀은 밥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밥에 차가운 숟가락을 넣는 건

어째서 기예에 가까운가


손이 시린 자가 장갑을 낀다

손목을 그어본 자가 시계를 찬다


문이 열린다

찬바람이 들이친다


바다는 사월의 날씨를 집결한다

해파리가 뜨겁다 가오리가 가깝다

열대어는 차갑다

심해어는 내 방을 엿본다


― 김소연 「열대어는 차갑다」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57-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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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r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