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2. 22:19

   순진함은 때가 묻지 않은 상태다. 순진함은 미숙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잘 속고 어리석고 자기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순진함은, 순진한 스스로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독이 될 때가 더러 있다. 반면, 순수함은 묻은 때를 털어낸 상태다. 순수함은 순수한 스스로에게도, 연루된 사람에게도 약이 될 때가 많다. 물론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 순수함의 약을 받아먹었을 때에 독이 되는 순간이 있긴 하다. 명현瞑眩 증상처럼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무언가 뒤집힌 듯한 알 수 없는 부작용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는 약으로 작용한다. 순수함은 성숙함의 한 속성이며, 현명함에 대한 하나의 근거다. 순진한 사람은 속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속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조종하기 쉽지만 순수한 사람은 조종할 수 없다.


― 김소연 「순진함과 순수함


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산책,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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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rola